사망을 보험사고로 하는 보험계약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은 면책사유에 해당하는 것이 보통이다. 즉 자살의 경우 사망보험금을 받지 못한다.

최수영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 전문위원,
법무법인 시공 보험전문변호사


다만 보험가입자(피보험자)가 정신질환 등으로 인해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발생한 자살은 보험금 지급 대상이다. 대법원(2015다5378)은 “그러한 사망은 피보험자의 고의에 의하지 않은 우발적인 사고로서 보험사고인 사망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다시 말해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의 극단적 선택은 일반사망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가 우발적인 것인지 아니면 고의적인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사망보험금 지급 여부를 결정하는 쟁점이다. 우발적 사고로 인정 받으려면(보험금을 받으려면) 시기적으로 ▲사고 이전 망인의 상태와 ▲사고 당시 망인의 상태를 각각 나누어 봐야 한다.

사고 이전 망인의 상태가 정상적인 범주에 속해 있지 않아야 한다. 즉 ‘인지능력과 판단력이 저하되는 정도의 우울장애 등 정신질환을 앓고 있거나 치료를 받지 않은 경우에도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을 정도의 인지기능 이상 증상이 존재’해야 한다.

자살 당시 우울증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라고 단정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힘들어도 제정신으로 버텨왔던 사람이 갑자기 자살했다고 볼 수 없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중증의 인지기능 이상증상이 없으면 우발적 사고로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 극단적 선택을 하기 이전부터 지속적인 인지기능 이상증상이 지속돼야 한다.

구체적인 사례로 사망보험금 지급 여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군인 A씨는 화장실 내 수건걸이에 스마트폰 충전케이블로 목을 매고 사망했다. 이 사건을 두고 서울중앙지방법원(2020가단5222668)은 고의사고로 보고 사망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했다. 즉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있었다는 의미다.

서울지법은 “사고 발생 이틀 전에 A씨가 상당량의 음주를 했고 박격포반장으로부터 꾸지람을 듣고 숙소로 돌아간 것은 인정되지만, 망인 A씨는 이전 정신질환을 이유로 치료를 받은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고의사고로 본 이유로 꼽았다.

반대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발생한 사고로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도 있다.

군인 B씨는 입대 이후 부대원들의 지속적인 질책과 놀림, 따돌림 등으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던 중 정서장애가 동반된 적응장애, 해리(전환)장애 등으로 정신과적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자살 충동 및 우울증상 악화 등도 지속적으로 호소했다.

대구지방법원(2021가단13544)은 “망인 B씨가 입대 전 정신질환으로 치료받은 내역이 없고 병무청 신체검사에서도 모두 정상이었다”며 “부대 내에서 질책, 폭언, 놀림, 따돌림, 갈굼 등으로 인하여 정신질환 발병 및 악화되었음이 인정되고, 부대 내에서도 망인 B씨를 관심대상으로 관리·감독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망인 B씨는 고의적인 자살이라기보다는 망인이 정신질환으로 인하여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한 우발적 사고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요컨대 사망보험금을 받는 조건인 우발적 사고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사고 당시까지 망인의 상태가 중증의 인지기능 이상 증상이 지속적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