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들이 신지급여력제도(K-ICS·킥스) 도입 당시 신청하지 않았던 요구자본 경과조치를 뒤늦게라도 적용할 수 있도록 해 달라며 금융당국에 요구하고 있다. 금리 인하 등으로 킥스비율이 악화되면서 재무 건전성 방어가 시급해진 게 배경이다. 금융당국은 경과조치의 취지상 중도 신청은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18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다수의 보험사가 지난해 말부터 금융감독원에 요구자본 경과조치 재신청 기회를 부여해 달라는 의견을 지속해서 전달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킥스 도입 당시 해당 조치를 신청하지 않거나 일부만 신청했던 보험사들이 최근 킥스비율 급락으로 건전성 부담이 가중되자 재신청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이미지=챗GPT]

보험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말부터 올 상반기까지 일부 보험사가 건전성 부담을 이유로 당국에 관련 의견을 제기한 것으로 안다”면서도 “당국이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요구자본 경과조치는 신규 도입된 장수·사업비·해지·대재해위험 측정으로 인한 보험위험액 증가분을 점진적으로 인식하는 조치(TIR), 리스크 측정기준 강화로 인한 주식위험액 증가분을 단계적으로 반영하는 조치(TER), 금리위험액 증가분을 완화하는 조치(TIRR)로 구성된다.

지난 2023년 기존 지급여력제도(RBC)에서 킥스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금감원은 보험사의 급격한 재무 충격을 완화하고 시장 불안을 방지하기 위해 이러한 경과조치에 대한 신청을 받았다. 킥스가 RBC보다 더 엄격한 신뢰수준을 적용하고 위험 측정 항목을 확대해 요구자본이 크게 늘어나므로 경과조치를 통해 보험사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취지였다.

당시 요구자본 경과조치를 신청한 보험사는 생·손보 업권을 통틀어 총 19곳이었다. 삼성생명, 한화생명, 신한라이프, 동양생명, DB손해보험, 현대해상, KB손해보험 등은 신청하지 않았다.

경과조치 미신청 보험사의 킥스비율은 2023년 말부터 올해 1분기까지 ▲삼성생명 218.8%→177.2% ▲한화생명 183.8%→154.1% ▲신한라이프 250.8%→189.3% ▲KB라이프 329.8%→234.1% ▲미래에셋생명 211.2%→183.3% ▲동양생명 193.4%→127.2% ▲DB손보 233.1%→204.7% ▲현대해상 173.2%→159.4% ▲KB손보 215.9%→182.2% 등 큰 폭으로 하락했다.

요구자본 경과조치를 신청한 19개사 중에서도 세 가지 경과조치(TIR·TER·TIRR)를 모두 신청한 곳은 농협생명, IBK연금, 푸본현대생명, 하나생명, 흥국화재, MG손보 등 6곳에 불과했다.

나머지 보험사는 일부 항목만 신청했으며, 이들 보험사 역시 킥스비율 하락을 면치 못했다. 가령 TIRR을 신청하지 않은 교보생명(265.4%→186.8%)과 TIR만 신청한 롯데손보(213.2%→119.9%)의 경과조치 후 킥스비율은 같은 기간 대폭 떨어졌다.

금감원은 요구자본 경과조치에 대해서는 재평가나 중도 신청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킥스 도입으로 자산·부채 시가평가에 따른 자본 감소분을 일정 기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반영하는 가용자본 경과조치(TAC)에 한해서만 재평가와 중도 신청을 인정하고 있다.

요구자본 경과조치의 재신청을 허용할 경우 제도의 일관성과 신뢰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보험사들의 부담을 감안해 다양한 규제 완화 조치를 시행하고 있는 점도 배경으로 꼽힌다. 금융당국은 할인율 현실화 속도를 조정하고, 킥스비율 감독 기준을 낮추는 등 제도 운영에 유연성을 부여해왔다.

금감원 관계자는 “요구자본은 충격 전후의 순자산가치 감소액을 측정하는 개념으로, 금리 등 외부 변수에 따른 변동성이 크지 않다”며 “반면 가용자본은 시가 평가시 금리 등 외생 변수의 영향을 크게 받아 경과조치 재신청 여부에서 차이를 둔다”고 설명했다.

이어 “킥스 도입 시점에 신청하지 않고 건전성이 악화된 뒤 경과조치를 요구하는 것은 제도 도입 취지에 맞지 않는다”며 “중도 신청을 허용하면 보험사들이 이를 당장의 적기시정조치 회피 수단으로 악용할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보험업계 전문가도 “경과조치는 제도 시행 초기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일시적 장치”라며 “이미 상당한 시간이 지난 상황에서 건전성 비율 악화를 이유로 소급 적용을 허용하는 것은 제도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킥스가 벤치마크한 솔벤시Ⅱ(유럽의 시가기반 지급여력제도)에서도 요구자본 경과조치를 중도 허용한 사례는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