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손해보험이 디지털 손해보험 자회사 캐롯손해보험의 흡수합병 절차에 착수했다. 캐롯손보는 2019년 출범 당시 한화그룹의 디지털 전환을 상징한 프로젝트로 주목을 받았으나, 대규모 손실만 남기고 실패로 막을 내렸다는 평가다. 다만 이번 합병이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2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한화손보는 지난 24일 캐롯손보 주식 2586만4084주를 약 2056억원에 추가로 취득한다고 공시했다. 인수 대상은 티맵모빌리티(600만주), 현대자동차(140만주) 등 외부 투자자들이 보유한 지분이다. 인수 완료시 한화손보의 캐롯손보 지분율은 98.3%로 올라선다.

[이미지=캐롯손해보험]

주당 인수가는 7950원이다. 이 가격 적용시 캐롯손보의 시가총액은 약 4790억원으로 추산된다. 이번 합병으로 한화손보가 보유하게 될 지분(98.3%)가치는 4709억원인 셈이다.

한화손보가 그동안 캐롯손보에 투입한 자금은 상당하다. 직접 출자와 타법인 지분 인수를 포함해 총 4890억원이 들어갔다. 이는 ▲2019년 516억원 ▲2021년 616억원 ▲2022년 502억원 ▲2023년 12월 1200억원 ▲2025년 4월 2056억원을 합산한 금액이다.

6년간 4890억원을 들여 지분가치를 4709억원으로 평가받았으므로 사실상 실패한 투자란 게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투자시점과 시간가치를 고려하지 않은 단순 투자수익률은 -3.7%다.

캐롯손보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차남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이 2019년 당시 최고디지털전략책임자(CDSO)로서 설계하고 출범시킨 국내 1호 디지털 손보사다. 결국 김 사장이 주도한 디지털 손보 실험이 수익화에 실패하며 한화손보가 손실을 떠안는 구조로 마무리됐다는 평가다.

캐롯손보는 '퍼마일 자동차보험' 등 거리 기반 요율제를 앞세워 시장의 관심을 끌었지만 단 한 해도 흑자를 내지 못했다. 캐롯손보는 ▲2019년 91억원 ▲2020년 381억원 ▲2021년 650억원 ▲2022년 795억원 ▲2023년 760억원 ▲2024년 662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누적 순손실은 3339억원에 이른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캐롯손보 합병은 김동원 사장이 추진한 디지털 보험사 실험이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쳤다는 점을 인정한 사건"이라며 "더 큰 재무적 리스크 확산을 막기 위한 통제적 조치로 볼 수 있다"고 짚었다.

다만 한화손보로선 당초 캐롯손보 인수가 전략적으로 불가피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IB업계 보험전문가는 "자동차보험은 일정 수준의 점유율을 확보하지 않으면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 사업"이라며 "한화손보 입장에선 완전히 철수할 수 없는 사업을 외주 형태로 돌려 점유율을 유지해온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화손보가 직접 자동차보험사업을 운영했어도 결과가 더 좋았을 것이란 보장은 없다"면서 "외부 자금을 활용한 점을 감안하면 캐롯손보 인수는 경제적 관점에서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고 진단했다.

이번 합병이 재무와 경영 측면에서 합리적 결정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캐롯손보가 축적한 기술력과 데이터 자산이 향후 시너지로 발휘될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한 보험회계 전문가는 "자회사 적자가 지속되면 한화손보는 매년 지분법 손실을 인식해야 한다"면서 "합병을 통해 손실을 일시에 떨어내고 실질적인 경영 통제권을 확보하는 것이 오히려 장기적인 비용 통제 측면에서 더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화손보 관계자도 "합병을 통해 캐롯손보의 자본건전성 이슈가 해소되고 디지털 채널 확보를 통해 상품 라인업 확대 및 교차판매 등 시너지가 기대된다"며 "이미 캐롯손보의 실적이 연결기준 손익에 반영된 상태이므로 합병이 재무건전성에 끼치는 영향은 적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매출과 비용의 통합 시너지를 통해 연결 기준 손익이 개선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